지금 회사로 옮기기 전까지, 8년간 LG 전자, 삼성 전자 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한국의 산업이 자생적으로 성공해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그 당시 내가 일했던 부서들은 그랬다) 언제나 선진국 사례의 얄팍한 정보들에 의존해 동경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개발해야하는지 방법론이 너무나 중요해 보였다. 심지어 정보통신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을 배워오라고 카네기 멜론 대학에 10주간 연수도 보내주었는데, 그 프로그램의 이름이 Software Engineering Evangelists for Korea였다. 선진 문물을 배워서 잘 전도하라는 그런... 소프트웨어로는 꽤 유명한 미국 회사에서 9년째 일하고 있는데, 솔직히 개발 방법론 같은 건 별 관심 없다고 보는게 맞을 듯.
주말에 EBS 다큐프라임 '시험 4부- 서울대 A+의 조건'을 봤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서울대학교에서 좋은 학점을 받는 학생들은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베끼듯 하나 하나 외운다는 이야기. 질문을 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학점에 백해 무익(?)하다는 한국 교육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문제 풀고 문제집 뒤에 답안지 들춰 보던 초중고등학교 12년, 복사해서 파는 문제 풀이집으로 벼락치기하던 대학교 4년을 더 하면 16년동안 문제 풀고 답지 보던 인생이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몇년 생활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정답이 존재할 것이고 정답을 맞춰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의 사고 방식에 제법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어 보인다는 것. 국내에 어떤 일이 있을 때, 해외 언론의 반응에 권위를 부여해서 전달한다든지, 이공계 교수의 업적을 SCI 인덱스로 평가하는 것 들은 정답을 맞춰 보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아이 초등학교 행사에 가보면 한국 사람을 포함한 아시안들의 클래식 악기 사랑은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강해 보인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동아시안 비율은 30%정도 될 것 같은데, 악기 연주회에 가 보면 배워서 연주하는 아이들의 90% 이상은 아시안이고, 장기자랑 같은 행사에 가보면 아시안의 상당수는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반면,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인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보는 것은 꽤 드물다. 나도 어려서 피아노를 배웠지만, 한국에서도 아이들에게 클래식 악기를 한 두 가지는 가르치는 것으로 들었으니, 미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만의 특별한 성향은 아닌 것 같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낸 많은 한국 사람들을 돌이켜 보면, 음악(노래방 음악 제외)에 각별한 취미가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음악을 매개로 친구 관계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황당한 억측은 아닐 듯), 그 중 클래식을 즐기는 사람은 더 더욱 많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자녀에 대한 클래식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교육열은 각별해 보인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각도로 해석이 될 수 있겠지만, 내가 보는 주된 이유는 클래식 음악 교육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객관적인 방식으로 교육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투자를 해도 안심이 되는 정답으로 보이기 때문 아닌가 싶다. 게다가 널리 이용되는 (내 어릴적 기준으로 보면 바이엘, 체르니.. 같은) 교재들이 시험 보는 것과 유사하게 성취도를 측정할 수 있어 부모 입장에서는 편해 보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