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사용자 중 한 명이, 돈을 지불할테니 사용 정지되지 않는 버전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다른 쉐어웨어들의 가격표를 참조해서 급조해 만든 가격표를 보여주며, site license로 1,000불을 제시했다. 그래서 나의 프로그램은 뉴욕의 한 의료 보험 회사에 처음으로 팔려나갔다.
그 후로 5년간은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에 6년째에 회사를 그만두고 full time으로 일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윈도우즈 95와 함께 무르익었던 군소 개발자들의 춘추전국 시대는 저물고 큰 업체들만 살아 남는 완숙기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무모하게 1인기업으로 성공해보려고 했던 것이 패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 프로그램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지금도 각별하다. 회사에서 하드웨어 보드 설계하고 납땜하던 시절에서 출발해서 뉴욕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기까지 몇차례의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는데, 이 쉐어웨어 개발 경험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내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고 사용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을 때의 희열은, 결정을 내릴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 올 초에 뉴욕으로 이주할 때도 여러가지 문제로 고민했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는 요소중 하나는 막연하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제대로 된 스타트업에 참여해 볼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럼 이제 미국에 왔으니 스타트업의 꿈을 키우는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금은 나와 가족들이 적응할 시기이고, 신분과 물리적인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재로서는 열정적인 마음이 드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듯. 그냥 스타트업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