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0일 월요일

나에게 스타트업이란...

97년에 처음 MFC를 배우면서 나와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로 윈도우즈용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사용하다가 인터넷 쉐어웨어 사이트에 올렸었다. 처음에는 사용자의 반응을 알아 보는 의미에서 매달 특정 일에 사용이 강제 정지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에 사용이 정지되는 새로운 버전을 받을 수 있도록 올려두었다.  

사용자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사용자 중 한 명이, 돈을 지불할테니 사용 정지되지 않는 버전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다른 쉐어웨어들의 가격표를 참조해서 급조해 만든 가격표를 보여주며, site license로 1,000불을 제시했다. 그래서 나의 프로그램은 뉴욕의 한 의료 보험 회사에 처음으로 팔려나갔다. 

그 후로 5년간은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에 6년째에 회사를 그만두고 full time으로 일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윈도우즈 95와 함께 무르익었던 군소 개발자들의 춘추전국 시대는 저물고 큰 업체들만 살아 남는 완숙기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무모하게 1인기업으로 성공해보려고 했던 것이 패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 프로그램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지금도 각별하다. 회사에서 하드웨어 보드 설계하고 납땜하던 시절에서 출발해서 뉴욕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기까지 몇차례의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는데, 이 쉐어웨어 개발 경험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내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고 사용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을 때의 희열은, 결정을 내릴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올 초에 뉴욕으로 이주할 때도 여러가지 문제로 고민했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는 요소중 하나는 막연하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제대로 된 스타트업에 참여해 볼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럼 이제 미국에 왔으니 스타트업의 꿈을 키우는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금은 나와 가족들이 적응할 시기이고, 신분과 물리적인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재로서는 열정적인 마음이 드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듯. 그냥 스타트업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니까.

2012년 7월 3일 화요일

마이크로매니지먼트와 자발성

대부분의 사람은 작든 크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자기 방식대로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마이크로매니지먼트(micromanagement)를 많이 구사하는 매니저는 직원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고 너무 많은 것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큰 목표 보다는 작은 목표만 위임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수시로 중간 결과를 체크하고 수정한다. 

직원이 수행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숙련도가 낮은 경우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는 일회적/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매니지먼트가 반복되면 큰 그림에 대한 이해는 형성되지 않은채로, 부정적인 피드백이 누적되면 직원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다. 즉 스스로 목표와 방법을 설정해도 궁극적으로 매니저에 의해 번복되거나 변경되기 때문에 스스로 방향을 설정할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지시를 기다리게 된다. 이 때 매니저가 의견을 물어보면 본인의 생각이 있어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하게 된다 - 어차피 까이게 될테니까. 일을 해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 심한 경우 일 자체를 착수하기를 기피하게 된다. 일을 해도 부정적인 평가가 돌아오고 일을 하지 않아도 부정적인 평가가 돌아온다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매니저가 지시한 일이라고 해도 직원의 의견이 가미되고 자신의 성과라는 느낌이 들고 그 진행과정의 독립성이 보장되면 자발성이 급격히 증대된다.  실제 사례로 기여도(impact)가 작지 않은 일이지만 본인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일을 담당하던 직원이 있었다. 그 직원은 계속 본인이 하는 일의 기여도가 매우 미미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해당 업무의 가치를 낮추어 업무에 착수하지 않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일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보다 싶었었는데, 어느 날 다른 자그마한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하고 며칠 동안 아주 열중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이디어의 예상 기여도는 매우 작은 것이었다. 왜 그토록 싫어하는 기여도 낮은 일을 즐겨하는지 반문하니 본인도 멋적었는지 엉뚱한 이유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예쁘고 화려한 집주인의 정원 보다 자갈밭이어도 자기만의 텃밭 가꾸기가 훨씬 신난다는 이야기. 좋은 매니저는 이 점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생각해 낸듯 상황을 만들어주어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하면서 방향은 매니저가 생각하는 곳으로 향하게끔 만드는 매니저.

나이가 중요한 사회

외국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호칭도 수평, 조직 문화도 수평이어서 좋다고들 이야기한다. 나도 나이와 상관없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 대화하고 일하는 우리 회사가 좋다.


그런데 이게 사적인 영역에서는 아직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인 우리 아이의 친구가 '하이 정큰'이라고 내 이름을 불러대는 건 그냥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옆집 초등학교 아이와 경주하면서 놀아주다가 살짝 져주면서 '너 잘하는데'라고 칭찬해줬더니 돌아온 반응 '너도 잘하는데~'를 듣는 그 순간 어색함과 느끼함이란...


왜 나는 초등학교 아이로부터 수평적인 관계가 되는 순간 마음이 불편했을까? 어려서부터 어른 말씀 잘 듣고 잘 따르도록 배워왔기 때문인 듯. 대학교에서도 선배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썼고, 회사에서는 상사의 말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데 중점을 두어왔으니... 오랜세월 몸에 베인 그 관계가 뒤집히며 아이에게 칭찬을 들으니 불편할 밖에.

그런데 왜 나는 15살 어린 팀장과 불편하지 않게 일하고 있는 것일까?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팀장으로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없는 것은 결국 지금 팀장이 똑똑하고 아는 것 많고 대화를 통해 일을 끌어나가는 리더쉽을 보이기 때문인 듯 (여기에 나의 어눌한 영어가 두 몫 더 해준다). 즉 상대방의 생산성이 나의 생산성 보다 높다는 것을 인정할 만한 충분한 근거들이 있고, 그 생산성의 차이를 논리적인 대화 방식으로 객관적으로 인정하게끔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는 듯하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나라 사회는 개개인의 능력 및 생산성의 차이 보다 나이에 따른 경험 축적에 기반한 능력차이가 더 큰 역할을 하는 사회 구성이었기 때문에 나이에 따른 수직 관계가 사회 질서 유지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된 것 아닐까 하는 ...역사적 근거 자료 없는 추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