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7일 목요일

유연한 근무 환경의 선행 조건

우리 회사는 근무 시간이 자유롭다. 나는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출근하는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막히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 주로 아침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한다. 내 뒷자리에서 일하는 우리 팀 사람은 11시 반에서 12시 사이에 출근하고 7시 정도에 퇴근한다 (더 늦게 가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 처음 입사했을 때 코드 리뷰를 해주던 사람은 육아 문제로 캐나다에 있는 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전에 집에서 일하고 점심에 놀다가 밤에 다시 일해도 되고, 매일 그러면 아마도 짤리겠지만 가끔 하루에 4시간만 일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2년 전에 같은 팀에서 일했던 사람은 오전 11시 즈음에 나와서 6시 조금 넘으면 집에 가고는 했다. 집에서 더 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심 시간 30분 빼면 6시간 반 일하는 셈이다. 한국 회사 같았으면 꽤나 얄미워 보였을텐데, 일을 워낙 잘하니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회사의 업무는 3개월 단위로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친구는 1달 반 가량은 뭐하는지 잘 모르겠다가, 후반부로 가면 목표했던 것을 마구 쏟아낸다. 일하는 시간이야 어떻든 서로 합의한 결과물만 만들어낼 수 있으면 된다.

우리 회사는 1주일에 하루 정도는 자유롭게 집에서 일할 수 있다. 개인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집에서 일하면 딴짓하고 싶은 충동을 종종 느낀다. 그리고 실제로 한 두 시간 정도 딴짓을 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순수 근무 시간의 총합은 항상 8시간을 넘기게 된다. 약간의 양심과 수십년간 길들여진 한국식 사고방식의 잔재도 기여를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진짜 이유는 6시간 일하는 친구보다 8시간 넘게 일하는 내가 더 성과를 많이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일 듯 하다. 주변에 머리 팽팽 돌고 능력있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X줄 타는데 일하는 시간마저 줄이면 결국 손해보는 사람은 나다.

트위터를 보면 우리나라 회사에서도 재택 근무를 많이들 시행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상사가 집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을 믿지 못해서 불만들이 꽤 높은 듯 싶다. 실제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그 상사의 입장이었으면 똑같이 불신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경험했던 우리나라 회사의 근무 평가 분위기는 객관적인 성과 중심이 아니거나 공정하지 않고 애매한 영역이 많아서 딴짓/딴생각의 충동을 눌러가면서 일에 집중해야할 이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근무 환경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양심과 관리자의 신뢰가 필요하다기보다, 평소 근무 시스템 자체가 통제와 감시가 없어도 돌아갈수 있게끔 바뀌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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